마오타이(茅台)와 더불어 중국 대표 명주로 꼽히는 우량예(五粮液·오량액, 양식 糧, 진 液)의 600년의 역사는 명나라 초기 쓰촨 이빈(宜賓)에서 원더양(溫德羊)이라는 양조장을 운영하던 천(陳)씨 가문이 잡곡을 혼합해 만든 이빈 특산의 잡량주(雜糧酒, 최초 이름) 연구에 심혈을 기울인 끝에 개발한 바이주(白酒)에서 비롯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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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량예 만들기 전 원 재료 체크 |
우량예 양조를 위한 5곡 투입 |
우량예 포장 과정 |
2018년 판매량으로 본 중국 10대 백주 순위에서도 우량예는 ① 茅台酒(마오타이지우)에 이어 두 번째였고, 네티즌이 뽑은 2018년 12대 명주에서도 ① 茅台酒(4,432표)에 이어 두 번째(4,153표)였다.
□ 우량예(五糧額, 쓰촨성) 개관
우량예는 수수·찹쌀·쌀·밀·옥수수(高粱·糯米·大米·小麥·玉米) 등 다섯 종류의 곡물로 양조한 술로 천(陳)씨 가문이 지금의 쓰촨(四川)성 이빈(宜賓)시에서 명나라(1368~1644년) 초기부터 생산하기 시작했다.
특유의 곡물 혼합 방식과 첨가되는 소량의 약재로 인해 독특한 맛과 향을 내는 우량예는 1995년 파나마 국제박람회에서 주류 부분 금상을 수상을 수상하는 등 매년 주류품평회에서 마오타이지우와 함께 중국의 대표 명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.
중국 내 판매가격은 종류에 따라, 350위안(한화 약 5.8만 원)~1,200위안(한화 20만 원)에 달한다. 상하이 푸둥(浦東)국제공항 면세점에서 720, 1,100, 1,980위안짜리 우량예를 전시, 판매하고 있었다. 물론 중국 공항의 면세점은 면세점이 아니기 때문에 시내 주류 상점보다 가격이 더 비싼 경우가 태반이다. 유의하시길!!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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명나라 때 중국 지도(좌), 푸동공항 면세점(?)의 1,980위안 우량예 |
끝이 보이지 않는 우량예 공장 |
2012년 7월 10일, 중국의 국가품질검사검역총국은 우량예에 대해 원산지 제품 보호를 승인했다. 한편 2018년 12월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‘세계브랜드연구소’(World Brand Lab)는 《2018 세계 500대 브랜드》를 발표했는데, 우량예를 326위(마오타이지우는 323위)에 랭크했다. 우량예 공장의 규모는 십리주성(十里酒城)이라는 애칭답게 공장의 규모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.
□ 우량예의 유구한 역사
우량예 양조의 역사는 진한(秦漢·221BC~220AD)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.
우량예 생산지인 이빈은 ‘중국 바이주(白酒)의 황금삼각(金三角) 지대의 핵심 지역인 쓰촨 분지 남쪽 가장자리에 있으며, 川(chuān·쓰촨성)·滇(diān·윈난성)·黔(qián·구이저우성) 등 3성이 교차하는 곳으로, 창장(長江) 상류 상태계의 보호벽이며, 아열대의 습한 계절풍 기후에 속했기 때문에 미생물이 자라기 좋아서 천혜의 양주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. 더욱이 민장(岷江)은 오염이 없고 수질이 깨끗하며, 각종 미량원소가 풍부하여 술 생산에 더 없이 좋은 조건을 갗추고 있었다.
이빈은 아름다운 풍수로, 예부터 많은 민족들이 모여사는 곳이었다. 선진(先秦: 구석기 시대~BC221) 시기에는 토착 요(僚·liáo, 동료 료)인들이 청주(淸酒)를 만들었고 진한(秦漢·221BC~220AD)시기에는 북[僰·Bó, 오랑캐 북, 운남(雲南)·귀주(貴州)·사천(四川) 지방에 살던 만족(蠻族)]인들이 구장주(蒟醬[Piper betl·후추과의 약초]酒)를 빚었고, 삼국(三国)시기 묘인(苗人)은 소홍과(小红果)로 과실주를 빚었다고 한다. 당 나라 때는 춘주(春酒)를 빚었다. 여기서 덧붙일 말은 '春'자에는 '술'이란 의미가 있다. 우량예 회사에서 만드는 중간 가격의 술인 '우량춘(五粮春)' 이라던가, 다른 명주의 하나인 '젠난춘(劍南春)'에春 자가 붙는 것은 다 그런 이유에서다.
송나라 때 이빈의 야오(姚)씨 양조장에서 수수·찹쌀·쌀·메밀·옥수수(高粱·糯米·大米·蕎子·玉米) 등 5가지 곡식으로 술을 빚었는데, 당시 이름은 ‘야오즈쉬에취(姚子雪曲)’이었다.
명나라 초기 이빈에 사는 천(陳) 씨 가문에서 야오 씨 양조장의 생산기술을 도입하여 비로소 오늘날의 우량예의 원형이 만들어졌는데, 당시 이름은 ‘자량지우(잡량주·雜粮酒)’였다. 당시는 가내 수공업 형태였다. 현재 사용하는 ‘우량예’ 저장 토굴은 명나라 때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우량예 역사는 600여년으로 잡는다.
청나라 말기인 1909년 과거에 급제한 선비 양후이취안(楊慧泉)이 술을 맛보고는 “이렇게 훌륭한 술이 ‘자량지우(雜粮酒)’라는 범속한 이름으로 불리는데, ‘야오즈쉬에취(姚子雪曲)’가 비롯 우아하긴 하나, 이 술의 운치를 표현하지 못한다. 이 술은 다섯 가지 곡식의 정화를 모아 만든 옥과 같은 액체(玉液)이니, ‘우량예(五粮液)’으로 하는게 좋겠다”고 하여 개명하였다. 2019년은 ‘우량예’란 명주 이름이 탄생한 지 110년이 되는 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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